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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칵, 칸바야시 료가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곁엔 한참 전에 수명을 다한 라디오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하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어느새 밭에서 돌아온 쿄카가 먼발치에 서 있다.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묻는다.

 

“답장, 없었나 보네.”

 

“응.”

 

  둘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말하려는 바를 알았다.
  신호는 끊겼다. 대답이 돌아올 곳은 없다.

もしも、
만약,

この夜を諦めてしまうなら
이 밤을 포기해 버린다면

  이곳은 히이라기 마을. 일본 본토의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그리고 그 작은 섬의 유일한 중학교, 히이라기 중학교에서 칸바야시 료와 미야케 쿄카는 교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처음 시도한 것은 세상이 멸망한다는 구설수가 돈 지 엿새 되던 날. 뭐라더라, 바이러스가 창궐했다고 하던가. 학교는 무기한 방학을 선포했고, 텔레비전에선 보도가 끊긴 지 오래다. 그래도 히이라기 섬은 평소대로 돌아간다. 마치 그런 이야기는 거짓말이라는 듯이. 왜 우린 이렇게 평화로운 걸까? 물어도 대답해 줄 이 없는데 계속 물어보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때는 연락이 제대로 됐던 것 같은데. 꼬박 삼 년이 지나니 이젠 완전히 고립되었다. 마을에도 한 차례 바이러스가 돌고, 이제 남은 건 우리2-A 뿐. 외신 보도마저 끊긴 지 오래인 지금,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시도한 무전기 통신이었지만…. 역시나 안 됐다.

 

  료는 눈앞의 사람을 다시 본다. 미야케 쿄카. 남은 친구들을 이끄는 실질적 리더. 모두가 쿄카를 신뢰하는 것엔 인망도, 함께한 시간도, 원래 맡던 반장이란 직책도 모두 큰 몫을 했겠지만, 그의 가장 큰 덕목은 판단력이었다. 현실과 이상을 저울질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답을 내놓는 그 능력이 여태껏 친구를 비롯한 사람들을 먹여 살린 것이다.

  그러니 알고 있었을 텐데. 이제 받을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어째서 이렇게 미련한 짓을 한 걸까? 물을 예정은 없지만 잠깐 궁금해졌다.
 

  료는 금방 그 생각을 잊어버렸다. 며칠 뒤 발견된 유리병의 존재로 반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약의 존재,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 그것만으로도 나갈 이유는 충분했다.

  개척하기 위해 배를 띄우기로 한, 그 전날. 료는 해안가에서 쿄카를 발견했다.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찮았다.

 

“뭐해? 반장.”

“료 씨.”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해안가를 훑는다. 울렁이는 바다 냄새가 유독 독하게 느껴졌다. 이건 여름인 탓일까, 세상이 멸망한 탓일까, 혹은.

 

“정했지?”

“그럼. 날 잘 알잖아?”

“응. 당연하지.”

 

  항상 그랬듯 둘에게는 미사여구가 붙은 번지르르한 말들이 필요치 않았다. 어차피 이해하지 못한다. 둘은 완전히 다른 궤도를 돈다. 서로가 그 사실을 지독하리만큼 잘 알고 있다.

 

“있지, 만약에 내가… 이 반을 포기한다면 어떨 것 같아?”
“의외라고 생각하겠지. 반장이? 라고, 생각하면서.”
“난 좋아하거든. 이 풍경을, 이 섬을, 이 반을… 특히 밤에 걷는 바닷가가 좋아. 조용하고, 별도 보이고.
…난 이곳이 좋아. 평생 여기에 있을 생각이었어. 그런데….”

 

  그런데도 이 밤을, 포기해 버린다면.
  어렴풋이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어쩌면 쿄카는 확인받고 싶었던 걸까. 우리가 완전히 고립되어, 이제 나가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영원히 이 섬에서 서로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게 최선이라는 확신을.

  그러나 그건 깨졌다. 아주 작은 편지가 거대한 선택의 발화점이 된 지는 오래다. 누군가는 이미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건 설령 반장이라 하더라도 돌릴 수 없을 것이다. 파도가 친다. 포말이 인다. 세상은 계속해서 돌고….

 

  이윽고 배가 뜰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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