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5.
ESC.
다시 F5.
……ESC.
큐세 마나코 는 온갖 에러 메시지로 가득찬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았다.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버그야 그의 파트너가 원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추가하고 그중 정 안 되겠다 싶은 걸 수정하거나 제거하다 보면 매번 생기는 거긴 한데, 이번에는 정도가 달랐다. 서버 ― 세계 자체가 마나코 본인을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큐세 마나코가 처음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은 8월의 첫 날. 매미 울음소리마저 멈춘, 여름의 한복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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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번 사태의 해결책이 아예 없지는 않다. 서버를 내리고, 모든 데이터를 영구히 삭제한 다음, 코드를 처음부터 다시 짜면 된다. 마나코에게 있어 이런 리빌드는…… 과장 하나 없이 말하건대 자면서도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이었다. 실제로 이 세계 ― worldFinalRelease.exe ― 도 그런 식으로 탄생했으니, 마치 “빛이 있으라” 하자 빛이 생긴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문제는 이곳에 야모모 코노하가 있다는 것이었다.
야모모 코노하. 또는 큐세 마나코가 저지른 희대의 실수. 또는 세계의 “의지”. 이 세계는 오로지 야모모 코노하의 마음대로 움직인다. 다시 말해, 코노하가 원하지 않는다면, 세계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야모모 코노하가, 큐세 마나코를, 거부하고 있다……?
상세 로그를 뒤적이던 마나코의 손이 문득 멈췄다. 눈앞의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서는 여전히 무수한 오류가 탐지되고, 구름은 갈길을 잃었으며, 햇볕도 더는 뜨겁지 않다. 어느 하나 멀쩡한 게 없는 이 세계는 본래 언제나 여름, 여름이어야 했다. 보고 있으면 눈이 아파서 찢어질 듯한 여름이어야만 했다. 누구의 간섭도 방해도 없는 둘만의 유토피아여야만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큐세 마나코가 그 망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 첫날, 마나코가 처음으로 눈을 떴던 날, 그러나 아직 인사를 건넬 만한 세계가 없어 결국 스스로 만들기로 결정했던 날, 그리고 그다음 날, 빛이 생겼던 바로 다음 날에, 코노하가 세상에 등장했다.
최초의 버그였다.
마나코는 이 버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나타났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그랬냐는 말은 의미가 없었고 무엇을 하다가 생겼는지는 당연했으므로 앞선 두 문제는 제일 먼저 머릿속에서 지워 없앴다. 버그란 것들이야 늘 이유라곤 알 수 없게 만들어지긴 하지만 이 버그는 심지어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는 점에서 마나코의 시선을 빼앗았다. 데이터 조각 주제에 누구를 따라하려고. 그 당시 세계에서 ‘인간의 형상’을 가진 존재는 큐세 마나코 딱 하나뿐이었다. 누구를 따라 하려는 건데. 뭐가 궁금해서.
하지만 그런 의문은 세계의 어느 곳에도 쓸모가 없었으므로 마나코는 별스럽지 않게 초기화 버튼을 눌렀다.



로딩 화면을 본 마나코는 뒤로 발라당 누웠다. 기다리는 건 지루하니까 어쩔 수 없어. 깜빡 잠들고 일어나면 전부 끝난 상태일 테니까. 그때까지만 잠시, 안녕…….
그러나 세상이 늘 마음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마나코는 이날 처음 배웠다. 초기화 끝났다며……? 아니, 내가 만들었는데, 왜……. 마나코가 코드를 아무리 쳐다보고 디버깅을 아무리 많이 해 봐도 이 “버그”는 사라질 생각은커녕 수정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앞선 초기화 과정에서 더 많은 걸 배운 모양이었는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서는 마나코의 주변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이렇듯 전혀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예상치 못한 “버그”가 점점 가까워지자 ― 이쯤에서 초기화 횟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마나코 본인도 세는 일을 포기했다 ― 마나코도 어느 순간부터 경계심이 희미해졌는지, 별안간 아무런 징조도 없이 하늘로 포르르 날아가려는 “버그”를 자기도 모르게 붙잡아 땅에 고이고이 세워 두기까지 했는데, 어느 날 이런 현실을 깨달은 마나코는 그만 정신을 놓아 버렸던 것 같다.
그냥 정식으로 추가하자.
그런 생각을 했던 걸 보면.
여기까지가 YamomoKonoha라는 이름의 함수가 만들어진 계기 되시겠다.
─── · ───
큐세 마나코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코노하가 이 순간을 떠나보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왜? 원하는 게 있다면 언제나 그랬듯이 이야기하면 될 것을. 서프라이즈 파티라도 준비하는 건가. 평소였다면 모르는 척도 놀라는 척도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상황이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달랐다. 이래서는 방법이 없어. 코노하가 실망하더라도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나아. 마나코는 홀로그램을 끄고 코노하를 찾으려 일어섰다.
그리고 공백을 느꼈다.
이 세계는 코노하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갖가지 생활 소음을 삽입해 둔 상태였는데, 외부 자극에 둔감한 마나코에게는 그것들이 모두 있으나 없으나한 요소였다. 반대로 코노하는 마나코 옆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이건 무슨 소리고, 저건 무슨 소리고, 어제는 고양이가 울길래 따라갔는데 정말정말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가 보이는 거야 그래서 들어갔더니 딱 두 조각밖에 안 남았다는 거 있지 우와 다행이다 하면서 마나코 것까지 샀거든 그런데 내가 다 먹어 버리긴 했지만 그거 정말 맛있어서 또 먹고 싶어졌어 지금 갔다 올게! 같은 말을 온 사방에 깔아 놓은 서라운드 스피커처럼 내뱉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
죽은듯이……. 정말 죽은듯이. 죽은듯이 조용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죽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코노하가 자주 출몰하던 곳으로 느리게 발걸음을 옮기던 마나코는 이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자리에 붙박였다.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야모모 코노하가 이미 사라졌다면?
그럴 이유도 그러지 않을(또는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큐세 마나코조차도 야모모 코노하의 탄생에서는 아무런 의도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 마나코가 코노하를 서버에 추가하면서 서버의 모든 구성을 기반부터 뜯어고쳤는데도 버그는 버그라는 건지, 코노하는 엄청난 ‘기분파’였다. 그러므로 세계에 처음 나타난 이유가 ‘그냥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라면 세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도 ‘그냥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어야 옳다.
그렇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닌데…….
어쩐지 이번 일은 ‘코노하다운’ 이유로 벌어진 게 아닌 것만 같아서, 마나코는 설익은 오한을 참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