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YRC
매미는 나무에 달라붙어 힘차게 운다. 짧은 생, 유일한 목적인 구애를 위한 울음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해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온도는 여전했다. 바깥에 놔둔 온도계는 3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드문드문 흘러가는 구름은 햇살을 가리기엔 영 부족하다. 며칠간 비가 내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아 습하기까지 했다. 정말 전형적이고 평범한 여름이었다. 방학을 하고도 학교에 불려 나온 이 행태까지 완벽하게 말이다. 그래도, 바깥에서 나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시원한 학교에 틀어박히는 것이 낫지 않은가. 에어컨을 학교처럼 빵빵하게 틀어놓을 수 있는 집은 드물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 한들 집에 가지 않고 싶을 리도 없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아무리 덥고 습해도 집이 좋은 것이다. 그렇게 하교를 기다리며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삐-
모두의 스마트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소리에 몇몇 아이들이 귀를 틀어막았다. 황급히 핸드폰을 확인하는 아이도 있었다. 도착한 문자는 다름 아닌 위급 재난 경보.
[행정안전부] 오늘 18시 32분 서울을 중심으로 한반도 전역에 운석 충돌 예정.
국민 여러분은 생필품을 챙겨 가까운 지하 대피소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긴급재난문자
긴급재난문자
지금
교실이 웅성댔다. 뭐? 이거 진짜야? 누가 장난친 거 아냐? 무슨 장난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쳐. 야, 누가 TV 좀 틀어봐. 그 말에 한 애가 TV를 켰다. 근데 교실 TV로 뉴스 볼 수 있어? 뭐… 어떻게 잘 해봐. 리모컨 쥐고 있는 애 누구야? 야! 좀 조용히 해! 산만하던 교실이 정적으로 메워진 것도 잠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연결을 성공한 TV에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뉴 스 속 보
[속보] 한반도에 운석 충돌 예상… 현재 낙하 중이며 저지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아…
뉴 스 속 보
국민 여러분은 신속히 가까운 대피소로 대피하시기를 바랍니다. 현재 각 정부 지자체 산하별로… ….
뭐야, 진짜라고? 대피하면 살 수 있어? 엄마 보고 싶어…. 여러 아이들의 말소리가 섞여 교실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마냥 이 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복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음소리가 들리고, 발이 빠른 몇몇 학생들은 학교를 뛰쳐나갔다. 그때, 교내 방송이 울렸다. …아아, 교내의 학생 여러분은 즉시 귀가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L
교내의 학생 여러분은 즉시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라피스 그랑블루는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하고 중얼거리는 얼굴에는 짜증이 깃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라피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핸드폰에서울리고있는경보음 TV화면에뜬속보 운석충돌
한반 도 전역 의 멸망 죽음.
내가 이 나라를 떠날 수 있나? 지금 당장? 아니, 불가능하다.
남은시간은세시간남짓간신히짐을챙겨대피소로이동이가능한그러나나를수용할수있는지하대피소가근처에남아있을까없을지도몰라그리고지하대피소라고살수있다는보장이없어살고싶어살고싶어살고싶어죽기싫어.
라피스는 벌떡 일어났다. 쿠당탕, 하고 넘어지는 의자는 안중에 없었다. 가방을 집어챘다. 교실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넘었다. 운동장을 달렸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쳤다. 사람들이 잔뜩 모인 대형 마트를, 지하철역을, 아직 생을 지속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렇게 달리던 도중 문득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하늘은 아름다웠다. 눈이 시리도록. 숨이 찼다. 눈물이 났다.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라피스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빠르게 지나쳐 왔던 것들을 눈에 담았다. 빛바랜 간판 사람들의 손때 묻은 난간 세월의 흔적이 담긴 모든 것들을. 어차피 본가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별로 갈 생각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렇다면 제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 외의 인연들은 어디 있나? 아마 자신들의 가족들에게 돌아갔겠지. 저와는 달리.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발걸음은 학교를 향하고 있었다. 달리 갈 곳도 없고, 혹여나… 정말 만약에라도. 걔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다 도착한 학교 정문에는, 우 이셴이 서 있었다.
#Y
삐—. 하는 소리에 몇몇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작게 소곤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밖으로 나가는 이들은 없었다. 그 때, 연이어서 자습실의 정적이 깨졌다. 한순간 자습실 안에 있던 대부분의 시선이 문으로 쏠렸다. 뭐야? 하고 말하는 듯한 표정들을 견디며 문을 연 사람은 소리쳤다. —, —! 이셴은 고개를 돌려 그 애를 가만히 바라보다 제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뺐다. 방송 안 들렸어? 운석이 충돌한다고, 모두 집으로 가래. 이건 좀 의외네, 당장 나라가 망해도 공부나 하라고 할 줄 알았더니. 이셴은 소란스럽게 뛰어가는 아이들과는 정반대로 느긋하게 가방을 챙겨 자습실의 문을 나섰다. 문단속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곧 부서질 문이지만, 어쨌거나. 세계 멸망, 은 아니고 나라 멸망에 별 커다란 심각성을 못 느낀 탓이다. 집으로 가라니 집으로 가지만 구태여 그래야 한다는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아, 집 지하에 방공호가 있으려나. 누가 이 의식의 흐름을 고스란히 듣고 있다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을 보러 가야지! 하고 외칠 테다. 물론 이셴 또한 알고 있다. 귀에서 피 날 정도로 받은 교육이 아닌가. 이셴의 집안은 유교적이었다. 남들이 전부 다 제사를 관둘 때도 꿋꿋이 해 온 것은 물론이다. 보수적이고 유서 깊은 가문. 그리고 그 가문에서는… 이셴은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효에 완전히 반대되는 장면. 자식이 부모에게 손을 올리는 것은 유교에서 지탄받아 마땅할 행동인데, 세계 멸망 앞에서는 그런 게 다 소용없다 이건가. 이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서러움이 있으셨겠지. 제 외조부는 어쩌면 지탄받아 마땅한 사람일지도 모르고. 우선 저를 이리 키워낸 것만 봐도 말이다. 이셴은 고요히 굳은 집 안의 정적을 깨트렸다. 어머니에게 아마도 마지막이 될 인사를 올렸다. 수고하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는 가족이든 뭐든 아무래도 좋았다. 이어폰을 도로 꼈다. 잔잔한 클래식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오늘 목표한 공부를 다 하지 못했으니까. 도로 도착한 학교는 조용했다. 이셴은 정문에서 한참 학교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내렸을 때, 각각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라피스와 록사나 호라티아였다.
#R
록사나는 도서관을 좋아했다. 세상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있을 것만 같아서. 제 물음을 친절하게 해결해 주는 것은 드무니까. 때로 어떤 책들은 그다지 친절하지 못했지만, 일반적으로는 말이다. 그리고 책은 단순히 읽힌다. 사람의 마음도 책처럼 읽을 수 있으면 좋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것도 찾아보면 나오려나, 데스노트로 사람을 죽이면 살인죄인지 아닌지도 알려주는데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서가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록사나!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동생이었다. 왜 안 와, 지구가 멸망한다잖아. 또 그런 건 아무렴 좋아, 하면서 책이나 읽고 있으려고 했지? 몰아치는 잔소리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보니 어느새, 건널목까지 끌려온 후였다. 아니, 잠깐만. 나는… …가고 싶지 않아.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마지막까지 가족을 안 보겠다고? 왜 이렇게 매정해, 우린 가족이잖아. 서로 사랑하는…. 록사나는 이마를 짚었다. 말은 바로 해야지. 왜겠어…. 왜? 어째서냐고. 아니 그 전에, 제발, 그만 끌고 가. 가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록사나는 동생을 뿌리쳤다. 그 애는 생각보다 더 쉽게 튕겨 나갔다. 그 눈을 가만히 마주 보다가, 록사나는 고개를 돌렸다. 넘어진 곳이 차도였다는 것과, 반대편에서 차가 오고 있었다는 것은 보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 환멸감이 들었나? 글쎄, 잘 모르겠다. 이제 정말 갈 곳이 없어진 것은 확실하다. 록사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걸었다. 어쩌면 여기 CCTV가 몇 개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걸어 도착한 학교의 정문에는 이미 이셴과 라피스가 서 있었다. 그리고, 저 위에서 얘들아, 여기야! 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록사나는 이셴과 라피스를 잠깐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학교 옥상 난간에 베니카 카코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C
베니카 카코는 옥상에 있었다. 멸망의 문자는 전해 받았다. 하지만 말이야, 부모님 같은 거 이미 돌아가셨으니까. 돌아갈 곳이 없어. 그래서 그저 옥상에 누워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멸망의 마지막 낭만을 즐기고 있던 것이다. 흘러가는 구름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있을 무렵,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코는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살짝 찌푸려진 것을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카코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던 옆 중학교 후배, 니키였다. 너,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선배라면 여기 있을 것 같았어요. 가요, 선배. 내가 왜 너랑 가. 한참 실랑이가 오갔다. 카코는 문득 환멸감을 느꼈다. 얘는 내가 뭐라고 이러는 걸까. 차라리 가족이라면 그 명분이라도 있지. 그러고 보니 이제 다 필요 없는 거 아니야? 잘 들어 니키, 너는 내게 아무것도 되지 못해. …왜요? 선배 가족이 폭발 사고로 돌아가신 것도, 그래서 힘든 것도 다 알아요. 제게 기대면…. …야, 너 우리 가족이 폭발 사고로 죽은 건 어떻게 알았어? 니키의 표정이 굳어졌다. 카코의 표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살인자를 곁에 두고 있었구나? 아니, 아니에요. 뭐가 아니야. 옥상 중앙에 서 있던 두 사람이 점점 계단으로 가까워졌다. 점점 뒤로 몰리던 니키가 계단에서 당장이라도 떨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툭, 하고. 아주, 아주, 아주 가벼운… 나비의 날갯짓과도 같은 손짓이 그에게 닿았다. 나비의 날갯짓은 폭풍을 불러온다. 카코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문을 닫았다. 죽지는 않았을 테다. 해 봤자 타박상 좀 입고 말았겠지. 옥상의 난간을 붙잡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 카코의 눈에 들어온 것은, 라피스와 이셴, 그리고 록사나였다. 카코는 활짝 웃었다.
#LoveYouRomantiC
베니카 카코와 록사나 호라티아, 라피스 그랑블루와 우 이셴이 한자리에 모였다. 카코가 태평하게 말을 꺼냈다. 곧 세상이 멸망한대. 나머지 세 사람의 반응은 정말, 성격 보였달까. 태평한 물음에 태평한 대답이었다. 저기, 우리들 너무 긴장감 없는 거 아니야? 뭐… 그러면 어떻니. 차라리 이 상태가 나아. 그렇죠, 이게 낫죠. 그래, 그렇다면야. 선선한 바람이 네 사람을 열다섯 번은 휩쓸고 지나갔을 때, 동시에, 바다 갈까. 하는 말이 나왔다. 그 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바다에 뛰어서 가자는 미친 소리가 만장일치로 동의를 얻고, 도시를 빠져나와 차들이 죄다 멈춘 도로를 달리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황에 다 같이 차체를 밟고 뛰어올랐다. 모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있었다. 바다가 코앞인 와중, 카코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러니까, 세계 멸망이 코앞이라도 낭만을 추구하고 싶어! 응?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다들 즐거운 것 같으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일단 우리, 아직은 여기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과 낭만을 가져다줄 테니까! 세계 멸망에서야 내 낭만을 받아들인 게 조금은 괘씸하지만… 아무렴 어때, 언제까지나 LoveYouRomantiC이아!